한국당 필리버스터는 '국회후진화 촌극' - 한겨레
[뉴스 분석]
108석 한국당이 소수당 행세
‘민주당이 국회 봉쇄’ 황당 논리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참석자들이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의원들 앞에는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 등을 비판하는 손팻말 이 걸려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달 29일 국회를 일시에 멈춰 세운 자유한국당의 199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을 두고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비상식적 정치 행위’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수당이 특정 법안에 반대할 권리를 보장하려고 도입된 제도를 법안 상정 자체를 차단하는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상식을 거슬러 제도를 변칙적으로 사용하면서 한국당이 발의한 법안에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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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적반하장’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여론의 반응이 심각하다고 느낀 자유한국당은 2일 오히려 책임을 더불어민주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떠넘기는 주장을 대거 쏟아냈다. 자신들의 필리버스터 신청이 ‘합법’이고, 민주당이 ‘불법 국회봉쇄’를 한다는 황당한 논리도 등장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인근 ‘투쟁 텐트’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민주당의 불법 국회봉쇄 3일차다. 하루빨리 통과돼야 할 민식이법, 각종 민생법안이 여당의 국회봉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는데, 여당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라며 “여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이 합법적인 투쟁인 필리버스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의장을 향해 “사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특정 법안의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되면 해당 법안에 대한 표결은 토론이 종결될 때까지 미뤄진다. 제도 취지대로라면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한국당이 반대하는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때까지 본회의에 올라온 199개 법안 모두를 대상으로 신청했다. 법안 상정 자체를 막기 위한 ‘무차별적 볼모잡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볼모 잡힌’ 법안 중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도 27건이나 됐다.
정치 도의상으로 봐도 한국당의 선택은 심각한 ‘배신’이라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29일 본회의는 교섭단체 3당 간 신사협정 아래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열기로 한 일정이었다.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은 먼저 처리하고 견해차가 큰 패스트트랙 법안을 놓고 싸우자’는 취지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당이 기본적인 신사협정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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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필리버스터 논란
한국당에 대한 비난 여론은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등) 통과가 무산되면서 커졌다. 이에 한국당은 ‘민식이법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았다.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자는 제안을 민주당이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한 해명에 가깝다. 29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요구했다. 명백하게 ‘민식이법’을 선거법 저지용으로 활용한 발언이었다. ‘민식이법’ 통과를 위해 요구조건을 내건 사실은 쏙 뺀 채 ‘필리버스터 신청에서 빠졌다’는 점만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민식이법이 빠진 이유는 해당 법안이 한국당의 무더기 신청 이후 뒤늦게 법제사법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넘어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민식이법 통과만을 위한 본회의는 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견이 있는 유치원 3법에 필리버스터를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통과에 합의한 법들을 볼모 삼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익표 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당은 마치 민식이법만 통과되면 민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199건의 안건에는 국가안보 강화, 자연재해 대비, 지방분권 강화, 전통시장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여성과 농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면 민식이법을 통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민식이법’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한국당이 대답해야 한다”고 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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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 잃은 한국당
지도부의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청 전략을 두고 한국당 내부에서도 ‘악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협상에서는 주고받아야 하는 건데, 모든 법안을 원천 봉쇄해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여당이 어떻게 나올지 계산하지 않고,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시간이 끌 수 있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얕은수를 쓰다 출구 전략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직전에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협상과 타협이 실종된 정치는 국회의 존재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는 손자병법에도 없는 지략”이라며 “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협상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자신들이 반대하지도 않는 법안까지 무더기로 필리버스터 하겠다는 건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가지치기해서 협상할 건 하고, 강행할 건 해야 하는데, 연좌농성하듯이 쇠사슬로 모든 것을 칭칭 묶어버리는 식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법안 199건을 모두 하나로 묶어버린 건 게임의 규칙을 흐트러트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원철 장나래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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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12:34:3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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